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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 헤드셋을 처음 박스에서 꺼내던 날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눈앞에 다른 세계가 펼쳐지는 그 감각은 분명 '미래가 왔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15분도 지나지 않아 콧등이 눌리기 시작했고, 여름이 되자 그 기기는 방 한구석 신세가 됐습니다. 삼성과 구글이 2026년 하반기 출시를 목표로 AI 글래스를 공동 개발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제 머릿속에 제일 먼저 떠오른 건 그 먼지 쌓인 헤드셋이었습니다.

15분도 못 버텼던 착용감, 이번엔 다를까

솔직히 저는 처음에 이 제품도 비슷한 결말을 맞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2013년에 나온 구글 글래스가 괴상한 디자인과 반나절도 못 가는 배터리로 처참하게 실패했던 걸 직접 지켜봤기 때문입니다. 제가 직접 써봤던 VR 기기들도 무게가 조금만 늘어도 착용 시간이 급격히 짧아졌고, 귀 뒷부분과 콧등에 남는 압박감은 꽤 오래 지속됐습니다.

 

그런데 이번 삼성·구글 협업 제품의 목표 스펙을 보고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무게 50g 미만이라는 수치가 핵심입니다. 일반 금속 안경테 하나가 보통 25~30g 수준이니, 카메라·마이크·스피커·배터리를 다 집어넣고도 일반 안경 두 배 무게에 맞추겠다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에 디자인을 맡은 곳이 젠틀몬스터라는 점도 의미가 다릅니다. 구글은 젠틀몬스터에 약 1억 달러를 투자하고 지분 14%를 취득했는데, 단순히 외형을 예쁘게 다듬는 수준이 아니라 인체공학적 구조 설계와 무게 배분까지 초기 단계부터 함께 설계에 참여하는 구조입니다.

 

디스플레이 기술도 과거와 차원이 다릅니다. 이번 제품에는 마이크로 OLED(Micro OLED) 방식의 패널이 탑재됩니다. 마이크로 OLED란? 기존 OLED보다 훨씬 미세한 화소를 더 촘촘하게 배열한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손톱만 한 크기에 고해상도를 구현할 수 있어 눈 바로 앞에 두는 웨어러블 기기에 적합합니다. 삼성 디스플레이가 탑재를 목표로 하는 수치는 3,800 PPI인데, 일반 스마트폰 화면이 보통 400~500 PPI 수준임을 감안하면 얼마나 정밀한지 체감이 됩니다.

 

제 경험상, 과거 기기들이 외면받은 가장 큰 이유 두 가지는 착용감과 디자인이었습니다. 이 두 가지를 동시에 해결할 가능성이 이번만큼 높았던 적은 없었습니다.

한국 부품 생태계의 진짜 위치

AI 글래스 한 대를 완성하려면 생각보다 훨씬 많은 부품이 필요합니다. 현재 한국 기업들이 담당하는 영역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디스플레이: 삼성 디스플레이, LG 디스플레이 (마이크로 OLED)
  • 배터리: 삼성 SDI, LG 에너지솔루션
  • 카메라 모듈: 삼성전기, LG이노텍
  • 반도체: 삼성전자 시스템반도체, SK하이닉스
  • 광학 부품 및 특화 칩: 사피엔 반도체, 라운텍 등 중소기업
  • 웨이브가이드: LG전자 개발 중 (두께 1.3mm 이하 목표)

여기서 웨이브가이드(Waveguide)란 초소형 프로젝터가 쏘는 빛을 사용자의 눈까지 오차 없이 전달하는 광학 부품을 뜻합니다. 증강현실(AR) 안경에서는 이 부품이 없으면 렌즈 위에 정보를 띄우는 기능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LG전자가 이 부품을 두께 1.3mm 이하, 무게도 극소화한 초경량 사양으로 개발 중이라는 점은 주목할 만합니다.

 

메타와 레이밴이 협업한 현재 시장 점유율 1위 제품에도 한국산 핵심 부품이 상당 비중을 차지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스마트폰 시장에서 한국산 부품이 전체 원가의 30~40%를 점유한다는 업계 분석을 고려하면(출처: 한국무역협회), AI 글래스 시장에서도 비슷하거나 그 이상의 점유율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디스플레이와 배터리 의존도가 스마트폰보다 더 높은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LG전자가 2026년 4월 스마트 글래스 전담 조직을 신설하고 온디바이스 AI (On-device AI) 기반 독자 개발에 나선 것도 이 흐름과 맞닿아 있습니다. 온디바이스 AI(On-device AI)란? 클라우드 서버에 데이터를 보내지 않고 기기 자체에서 AI 연산을 처리하는 방식입니다. 인터넷 연결 없이도 작동하고, 개인정보 유출 위험을 차단한다는 점에서 프라이버시 측면의 차별화 포인트가 됩니다.

 

글로벌 AI 스마트 글래스 시장은 2025년 12억 달러에서 2026년 56억 달러로 약 4배 성장이 예측되며, 2040년에는 2,000억 달러 규모에 달할 것으로 전망됩니다(출처: IDC). 이 시장에서 한국 부품 생태계가 30% 점유율을 유지한다고 가정하면, 2040년 기준 약 60조 원 이상의 시장 몫이 됩니다.

'부품 강국'이라는 말이 가리는 것

그런데 여기서 제가 좀 다르게 보는 부분이 있습니다. 한국이 핵심 부품을 공급하니 결국 AI 글래스 시장을 주도한다는 시각이 꽤 퍼져 있는데, 저는 그게 절반만 맞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한번 경험했습니다. 스마트폰 시대에 삼성은 갤럭시라는 훌륭한 하드웨어를 전 세계에 팔았지만, 그 안에서 굴러가는 앱 생태계와 수수료, 데이터 수익은 구글 플레이스토어를 통해 미국으로 빠져나갔습니다. 이번 AI 글래스의 두뇌 역할을 하는 소프트웨어는 구글 제미나이(Gemini)이고, 운영체제는 안드로이드 XR입니다. 안드로이드 XR이란? 구글이 XR(확장현실) 기기 전용으로 개발한 운영체제로, 앱 생태계 전반의 통제권을 구글이 쥐게 됩니다.

 

제 경험상, 플랫폼을 가진 쪽이 결국 가장 높은 마진을 가져갑니다. 하드웨어를 만드는 쪽은 치열한 원가 경쟁에 노출되지만, 소프트웨어와 서비스 레이어를 쥔 쪽은 구조적으로 더 높은 수익을 안정적으로 가져갑니다. 스마트폰 시대의 구조가 그대로 재현될 가능성이 있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LG전자의 온디바이스 AI 전략이나 삼성의 갤럭시 링·워치·글래스를 하나의 생태계로 묶는 시도가 단순한 제품 확장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사용자의 생체 데이터와 일상 데이터를 한국 기업이 직접 집적하고 서비스화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지 않으면, 300조 원 규모로 성장할 시장에서 알짜 수익은 또다시 미국 빅테크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부품 공급자로 시작해 생태계 주도자로 올라서는 것, 한국 산업이 반도체와 배터리에서 반복해온 패턴입니다. AI 글래스에서도 그 패턴을 밟을 수 있을지는 결국 소프트웨어와 서비스 영역에서 얼마나 독자적인 지위를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2026년 하반기 출시가 확정된 갤럭시 글래스가 실제로 어떤 사용자 경험을 만들어내는지 저도 직접 확인해 볼 생각입니다. 과거 VR 헤드셋 때처럼 설레며 박스를 열었다가 서랍 속에 넣게 될지, 아니면 안경을 쓰듯 매일 아침 자연스럽게 집어 들게 될지. 그 결과가 AI 글래스 시장의 방향을 가늠하는 첫 번째 실질적인 신호가 될 것입니다. 기술이 익어가는 속도는 빠르지만, 결국 일상에 녹아드는 건 착용감과 생태계가 함께 완성됐을 때입니다.

 

 

참고: 유튜브 채널  <Menezes Santos>  - 삼성 AI 글래스, 구글과 전격 협력에 전 세계가 발칵 뒤집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