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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처음엔 AI 챗봇이 고객 응대를 웬만큼 해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직접 현장에서 부딪혀보니 AI가 아무리 정교한 답변을 내놓아도 끝내 채우지 못하는 빈자리가 있었습니다. KAIST 정재승 교수가 지적한 'AI의 맥락 파악 한계'는 그 빈자리가 왜 생기는지를 명쾌하게 설명해 줍니다. AI 시대일수록 인간에게 진짜 필요한 능력이 무엇인지, 다양한 시각을 살펴보면서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세차장 문제가 드러낸 AI의 맥락 파악 한계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세계 유수의 AI 모델 50여 개에게 "세차장이 집에서 50m 떨어져 있는데, 차를 타고 가야 할까 걸어가야 할까?"라고 물었을 때, 무려 42개가 "건강을 위해 걸어가라"고 답했다는 실험 결과입니다. 세차를 하려면 반드시 차를 가져가야 한다는, 인간이라면 0.1초도 안 걸려 파악할 전제를 AI는 놓친 것입니다.

 

이 문제가 흥미로운 이유는 AI가 멍청해서가 아닙니다. AI는 인터넷에 존재하는 방대한 텍스트를 학습하는데, 인터넷 어디에도 "세차장 갈 때 걸어가면 안 된다"는 문장은 없습니다. 너무 당연해서 아무도 굳이 쓰지 않은 것입니다. 여기서 현재 AI의 근본적인 한계가 드러납니다. AI는 언어의 통계적 패턴을 학습하는 것이지, 현실 세계의 맥락을 이해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와 관련해 연구자들이 주목하는 개념이 바로 AGI(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입니다. AGI란 특정 과제만 잘 처리하는 현재의 AI가 아니라, 인간처럼 다양한 상황에서 종합적으로 사고하고 판단하는 범용 인공지능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수학 문제도 풀고, 사람 마음도 헤아리고, 낯선 상황에서도 맥락을 짚어내는 능력 전반을 갖춘 AI입니다. 샘 올트먼 같은 인물은 5년 안에 AGI가 실현될 것이라 주장하는 반면, 많은 연구자들은 인간이 어떻게 일반 지능을 갖게 되었는지조차 아직 완전히 해명되지 않았다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저는 세차장 문제를 보면서 후자의 시각이 더 설득력 있다고 느꼈습니다.

📌 요약

AI는 방대한 언어를 학습하지만 현실의 맥락을 이해하지는 못하며, 이것이 AGI 실현이 쉽지 않은 이유입니다.

 

격앙된 고객 전화에서 배운 공감 능력의 실체

 

제가 카페를 직접 운영하며 겪은 일입니다. 매장 기기 오작동으로 화가 잔뜩 난 고객에게서 전화가 걸려온 적이 있었습니다. 요즘 AI 고객상담 챗봇이라면 응대 매뉴얼에 따라 "규정상 지원이 어렵습니다" 혹은 "해당 항목을 확인해 주십시오"라는 매끄러운 답변을 즉시 내놓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순간 고객에게 필요한 것은 정답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기술적 해결책을 꺼내기 전에 먼저 멈췄습니다. "많이 당황스러우셨겠어요. 저라도 그 상황이었으면 정말 속상했을 것 같습니다." 그 한마디를 건네고 상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줬을 때, 고객의 목소리 톤이 달라졌습니다. 경계가 풀리고 대화가 시작된 것입니다. 이후 차분하게 문제를 처리해 드렸고, 그분은 이후 단골이 되어 주변에 저를 적극 추천해 주셨습니다.

 

AI는 공감하는 것처럼 말할 수는 있습니다. 실제로 요즘 챗봇과 대화하다 보면 사람이랑 이야기하는 느낌이 든다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차이를 현장에서 몸으로 느꼈습니다. AI는 공감의 형식을 구현하지만, 상대방의 떨리는 목소리 속 행간을 읽고 타이밍을 맞춰 진심을 전달하는 것은 전혀 다른 능력입니다. 이것은 감정이입(Empathy), 즉 상대의 내면 상태를 자신의 것처럼 느끼는 능력인데, 여기서 감정이입이란? 단순히 위로의 말을 구사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처한 상황과 감정을 내 안에서 실제로 재현하는 인지적·정서적 과정을 말합니다. 이 능력은 수치 데이터로 학습되는 것이 아닙니다.

  • AI는 공감의 언어를 생성하지만, 상황의 무게와 타이밍을 읽는 것은 인간의 몫입니다.
  • 화난 고객에게 필요한 것은 정확한 정보보다 "내 말을 들어주는 사람"입니다.
  • 현장에서 쌓인 공감 경험은 어떤 알고리즘도 대체할 수 없는 자산입니다.

📌 요약

공감 능력은 단순히 언어 형식을 구사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감정 상태를 내면에서 실제로 재현하는 인지적·정서적 과정입니다. 이것이 바로 AI가 흉내 내기 어려운 인간만의 핵심 역량입니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복합 사고가 만드는 차이

 

AI를 잘 활용하는 사람이 미래를 지배할 것이라는 말에 동의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도 방향 자체는 맞다고 봅니다. 그런데 여기서 제가 덧붙이고 싶은 게 있습니다. AI를 도구로 쓰려면, 그 도구로 무엇을 할지 먼저 알아야 합니다. 그 "무엇"을 결정하는 능력이 바로 복합 사고력입니다.

 

복합 사고력(Complex Thinking)이란? 단순히 여러 정보를 동시에 처리하는 것이 아닙니다. 시킨 일이 적절한지 비판적으로 따지고, 아직 질문조차 없는 문제를 먼저 발견하며, 여러 이해관계자의 입장을 동시에 고려하면서 결단을 내리는 능력 전반을 포괄합니다. 쉽게 말해, "이 일을 어떻게 빠르게 처리할까"가 아니라 "이 일을 해야 하는지부터 따져보는" 사고 습관입니다.

 

SK하이닉스가 GPU 옆에서 데이터를 초고속으로 공급하는 HBM(High Bandwidth Memory) 반도체에 선제 투자한 결정이 좋은 예입니다. HBM이란? 기존 메모리보다 데이터 전송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인 고대역폭 메모리로, AI 연산을 빠르게 하기 위한 핵심 부품입니다. 당시엔 AI 시대가 얼마나 빨리 올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참고할 전례도, 확신할 데이터도 부족한 상황에서 내린 그 결단은 AI가 계산해 줄 수 없는 판단이었습니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의사 결정은 항상 인간의 몫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 이것이 제 경험상에서도 반복적으로 확인되는 사실입니다.

 

미국 퓨리서치센터(Pew Research Center)의 조사에 따르면, AI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AGI 실현 시기에 대한 전망은 크게 엇갈립니다(출처: Pew Research Center). 이 엇갈림 자체가 역설적으로, 불확실성 앞에서 판단을 내리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줍니다.

📌 요약

 복합 사고력은 AI를 단순 도구로 부리는 주체적 능력이며, 불확실한 상황에서의 의사 결정은 앞으로도 인간의 고유 영역으로 남을 것입니다.

 

AI 찬가 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

AI가 대단하다는 말에 반박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수치 계산, 이미지 처리, 언어 생성에서 AI는 이미 인간을 앞질렀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흐름을 보면서 걱정되는 게 따로 있습니다.

 

AI 덕분에 편리해진 것들이 많은데, 그 편의성이 정작 인간이 훈련해야 할 능력을 조용히 퇴화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점입니다. 어릴 때 친구와 싸우고 화해하는 과정을 통해 갈등 조정 능력이 형성됩니다. 그런데 요즘은 아이들이 갈등 상황에 부모나 제3자가 즉각 개입해 대리 해결해 줍니다. 설득과 공감은 이론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숱한 불편함과 시행착오를 견디며 몸에 새겨지는 근육입니다. 효율만 쫓다가 정작 AI 시대에 가장 필요한 '공감 근육'을 우리 스스로 약화시키고 있는 역설이 발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양극화의 문제입니다. "AI를 잘 활용하는 복합 사고형 인간이 기여도가 높아질 것"이라는 말은 분명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 이면에는 AI가 만들어준 자동 완성 답안에 안주하며 스스로 고민하는 능력을 잃어가는 다수가 존재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청소년 우울증 지표를 보면 이 우려가 근거 없지 않습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청소년 우울감 관련 지표는 201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악화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출처: CDC).

 

AI 시대의 진짜 기준점은 "AI가 얼마나 발전하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AI에게 제대로 된 질문을 던질 만큼 깊이 생각하고 있느냐"에 있다고 봅니다. 기술의 속도에 눈이 멀어 인간다움을 훈련할 기회를 스스로 버린다면, AI에게 대체되는 것이 아니라 AI의 출력물을 그냥 소비하는 존재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 요약

지나친 효율과 편의성의 추구가 공감·갈등 조정 같은 인간 고유의 역량을 퇴화시킬 수 있으므로, AI 시대일수록 스스로 깊이 사고하고 직접 부딪히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AI가 공감 능력을 가지려면 얼마나 걸릴까요?

A. 낙관적으로 보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시간이 상당히 걸릴 것이라는 시각이 더 설득력 있다고 봅니다. 인간이 어떻게 감정과 욕망을 갖게 되었는지 그 신경과학적 메커니즘 자체가 아직 완전히 해명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형식적 공감은 이미 가능하지만, 상황의 무게와 타이밍을 맥락 속에서 읽어내는 공감은 다른 문제입니다.

 

Q. AGI가 실현되면 인간의 일자리는 다 없어지는 건가요?

A. AGI 실현 자체가 언제 가능할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크게 갈립니다. 다만 설령 AGI가 나온다 해도, 갈등을 중재하고 불확실한 상황에서 결단을 내리는 역할은 인간의 몫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AI를 도구로 잘 활용하면서 복합 사고력을 키우는 방향이 현실적인 준비라고 생각합니다.

 

Q. 세차장 문제처럼 AI가 맥락을 못 읽는 사례가 실제 업무에서도 생기나요?

A. 제 경험상 꽤 자주 생깁니다. AI는 명확하게 정의된 질문에는 강하지만, 질문 자체가 불완전하거나 상황의 전제가 암묵적일 때 엉뚱한 방향으로 달려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AI에게 정확한 질문을 던지는 능력, 즉 프롬프트 설계 자체가 복합 사고력의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Q. HBM이 AI 발전에 왜 그렇게 중요한가요?

A. AI 연산은 GPU가 담당하는데, GPU가 아무리 빨라도 처리할 데이터를 빠르게 공급해 주지 않으면 병목이 생깁니다. HBM은 GPU 바로 옆에서 대용량 데이터를 초고속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합니다. 계산 속도보다 데이터 공급 속도가 AI 성능의 실질적 한계가 되는 시대에, 메모리 반도체의 역할이 그만큼 커진 것입니다.

결론

기술이 빠르게 발전할수록 오히려 인간이 잘해야 할 것들이 더 선명해집니다. 맥락을 파악하는 능력, 상대의 감정을 진심으로 헤아리는 공감, 불확실한 상황에서 결단을 내리는 복합 사고력. 이것들은 AI가 빠르게 따라잡고 있는 영역이 아니라, 오히려 AI가 발전할수록 그 희소성이 높아지는 능력들입니다.

 

제 경험상, 이 능력들은 강의실에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불편하고 어색한 실제 관계 속에서 만들어집니다. 지금 당장 AI를 얼마나 잘 쓰느냐만큼, 사람과 직접 부딪히고 갈등을 해결하고 설득해 보는 경험을 쌓는 것이 중요합니다. AI 시대를 준비하는 가장 인간적인 방법은, 여전히 인간답게 살아가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참고: 유튜브 채널 <SK하이닉스 [SK hynix]> - [반도체 인문학 EP2] AI가 절대 못하는 것  | KAIST 교수 정재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