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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매출 29억 원짜리 스타트업이 메타로부터 1조 2,000억 원 규모의 인수 제안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거절했습니다. 처음 이 소식을 접했을 때 솔직히 믿기지 않았습니다. 제가 기획 업무를 하면서 수없이 목격한 건, 아무리 좋은 기술을 가진 팀도 결국 '돈 앞에서 방향을 튼다'는 현실이었거든요.

 

그런데 퓨리오사AI는 달랐습니다. 그 배경을 파고들수록 이 회사가 단순히 운이 좋은 게 아니라는 걸 확신하게 됐습니다.

전력효율로 판을 뒤집은 추론칩의 진짜 계산

엔비디아의 최상위 AI 가속기인 H100은 단일 칩 기준으로 700W 수준의 전력을 소비합니다. 반면 퓨리오사AI의 2세대 칩 레니게이드(Reno)는 180W로 설계되었습니다. 단순 비교로도 4분의 1 수준인데, 이게 왜 이렇게 큰 차이를 만드는 걸까요?

 

데이터센터를 운용해 본 사람이라면 압니다. 칩 구매 비용은 일회성이지만, 전기요금 청구서는 매달 날아옵니다. 게다가 수천 장의 칩이 발산하는 열을 식히는 냉각 설비 비용까지 더하면, 실제 운용 비용은 초기 도입 비용을 훌쩍 넘기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제가 과거 프로젝트에서 서버 인프라를 검토할 때도 비슷한 구조였습니다. 최고 사양으로 구성하면 성능은 좋은데, 유지비가 예산을 잠식해 결국 스케일다운을 검토하게 되더군요.

 

유럽 데이터센터들이 처한 상황이 정확히 그랬습니다. 서버를 더 들여놓고 싶어도 전력 공급 자체가 부족해 물리적으로 확장이 막혀 있었습니다. 이 맥락에서 레니게이드는 '좋은 선택지'가 아니라 사실상 유일한 탈출구였던 셈입니다. 2026년 8월 스웨덴 스톡홀름 데이터센터가 칩 8,800장, 총 1,230억 원 규모의 발주를 넣은 것도 이 흐름의 연장선입니다.

 

여기서 레니게이드가 전력을 낮출 수 있었던 구조적 이유가 있습니다. 퓨리오사AI는 AI가 수행하는 두 가지 작업, 즉 학습(Training)과 추론(Inference)추론에만 집중했습니다. 추론(Inference)이란? 이미 완성된 AI 모델이 실시간 질문에 답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챗GPT에 질문을 던졌을 때 답변이 생성되는 그 순간이 전부 추론입니다. 학습은 한 번 크게 시키면 끝이지만, 추론은 지금 이 순간도 전 세계에서 수십억 번씩 동시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빅테크가 앞으로 가장 많은 칩을 필요로 하는 영역이 바로 여기입니다.

 

실제 LG AI 연구원이 자체 모델에 레니게이드를 적용해 8개월간 운용한 결과, 동일 전력 대비 엔비디아 GPU보다 2.25배 많은 추론 작업을 처리했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불필요한 기능을 걷어냈더니 오히려 같은 전력으로 더 많은 일을 해낸 겁니다.

  • 엔비디아 H100 소비전력: 약 700W / 레니게이드: 180W (약 1/4 수준)
  • 동일 전력 기준 추론 처리량: 엔비디아 GPU 대비 2.25배 (출처: LG AI 연구원)
  • 2026년 8월 스웨덴 스톡홀름 데이터센터 발주: 8,800장, 1,230억 원 규모
  • SK하이닉스의 고대역폭 메모리(HBM) 탑재로 메모리 대역폭과 추론 성능 동시 확보

고대역폭 메모리(HBM)란? 여러 개의 메모리 칩을 수직으로 적층해 데이터 이동 속도를 극대화한 차세대 메모리입니다. AI 추론 과정에서 대용량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해야 할 때 병목을 줄여주는 핵심 부품으로, 현재 SK하이닉스가 세계 시장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세계 1위 메모리 강국의 부품이 2~3% 점유율에 머물던 국내 시스템 반도체 설계사 칩에 탑재된 것은 구조적으로 꽤 의미 있는 조합입니다.

📌 레니게이드(Reno) 칩 핵심 요약

  • 초저전력 설계: 엔비디아 H100(700W) 대비 약 1/4 수준인 180W 소비 전력
  • 추론(Inference) 특화: 학습을 빼고 실시간 대답 연산에만 집중하여 동일 전력 대비 2.25배 성능 구현
  • 유럽 시장 해법: 전력 부족을 겪는 스톡홀름 데이터센터에 8,800장(1,230억 원) 공급 계약
  • HBM 연동: SK하이닉스의 고대역폭 메모리(HBM) 탑재로 데이터 병목 현상 최소화

 

반도체 회사가 개발자 70%인 이유, 그리고 생태계의 벽

제가 새로운 기술 스택이나 플랫폼을 검토할 때 가장 먼저 보는 것이 있습니다. 커뮤니티와 문서화 수준입니다. 성능이 아무리 뛰어나도 쓸 줄 아는 사람이 없으면 도입되지 않습니다. 퓨리오사AI가 정면으로 부딪혀야 했던 엔비디아의 진짜 무기도 칩이 아니었습니다.

 

쿠다(CUDA)가 그것입니다. 쿠다란 엔비디아가 2006년에 공개한 병렬 컴퓨팅 플랫폼으로, AI 모델 개발자라면 대부분 이 환경 위에서 코드를 짜고 최적화합니다. 전 세계 수십만 명의 개발자가 10년 넘게 쌓아온 라이브러리, 튜토리얼, 노하우가 전부 쿠다 기반입니다. 칩을 바꾸는 건 단순히 하드웨어 교체가 아니라, 익숙한 개발 환경 전체를 갈아엎는 일입니다. 수많은 도전자들이 이 벽 앞에서 좌절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퓨리오사AI의 대응은 꽤 파격적이었습니다. 반도체 제조사임에도 전체 인력의 약 70%를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구성했습니다. 칩을 만드는 회사에서 프로그램을 짜는 사람이 더 많다는 건 구조적으로 기형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이건 백준호 대표가 AMD 출신 엔지니어로서 이미 뼈저리게 알고 있던 교훈을 조직 설계에 그대로 반영한 결과입니다. 하드웨어만으로는 절대 쿠다의 벽을 넘을 수 없다는 것.

 

소프트웨어 생태계 구축에만 3년 이상을 투자한 것도 이 연장선입니다. 그리고 이 과정이 자본 부족이라는 역설적 조건과 맞물렸습니다. 2016년 삼성전자를 나온 백준호 대표가 동료 엔지니어와 세 명이서 창업했을 때 초기 시드 투자금은 13억 원이었습니다. 글로벌 경쟁사들이 수천억을 쏟아붓던 판에서 사실상 푼돈이었죠. 월급이 한두 달씩 밀리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직원들이 자리를 지켰고, 백 대표는 개인 대출까지 끌어다 버텼습니다. 훗날 그는 "돈이 없었기 때문에 칩을 서둘러 찍어내야 한다는 조급함을 버리고 설계와 소프트웨어라는 본질에만 매달릴 수 있었다"고 회고했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개인적으로 꽤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과거에 제가 기획 단계에서 서비스를 준비할 때도, 예산이 넉넉할수록 오히려 방향이 흐트러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일단 만들어보자는 식으로 기능이 늘어나고, 정작 사용자가 필요로 하는 핵심 한 가지가 희석되는 패턴이었죠. 퓨리오사AI의 생존 방식은 제가 경험으로 체감한 그 역설과 정확히 겹쳤습니다.

 

물론 냉정하게 봐야 할 부분도 있습니다. 추론 전용 ASIC 칩, 즉 특정 연산에 특화된 주문형 반도체 설계는 퓨리오사AI만의 독점 영역이 아닙니다. ASIC(Application Specific Integrated Circuit)이란? 범용 처리가 아닌 특정 작업에 최적화된 반도체를 의미합니다. 구글의 TPU, 아마존의 Inferentia, 메타의 자체 칩 개발 계획까지, 빅테크들도 이미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엔비디아 역시 전력 효율을 개선한 Blackwell 아키텍처를 출시하며 간격을 좁히고 있습니다(출처: NVIDIA Blackwell 공식 페이지).

 

스웨덴 데이터센터 수주나 브로드컴과의 2나노 공정 협력이 성과이긴 하지만, 매출이 이제 막 100억 원대에 진입한 회사가 조 단위로 움직이는 상대들을 상대로 생태계 경쟁에서 버티려면, 칩 성능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합니다. 개발자들이 실제로 편하게 쓸 수 있는 소프트웨어 저변을 얼마나 빠르게 넓히느냐, 그게 진짜 갈림길로 보입니다.

📌 소프트웨어 생태계 전략 핵심 요약

  • 쿠다(CUDA)의 벽: 하드웨어 성능보다 독점적 개발 환경(소프트웨어)이 진짜 경쟁력
  • 파격적 조직 구성: 반도체 회사임에도 전체 인력의 약 70%를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구성
  • 1.2조 원 인수 거절: 메타의 인수 제안을 거절하고 범용 AI 칩 생태계 구축 도전
  • 차세대 비전: 브로드컴과 2나노 공정 기반 3세대 칩 공동 개발 (총 8,000억 원 실탄 확보)

 

자주 묻는 질문

Q. 퓨리오사AI 레니게이드 칩은 엔비디아 GPU와 직접 대체가 가능한가요?

A. 직접 대체라기보다는 용도가 다릅니다. 레니게이드는 AI 모델 학습 기능을 제거하고 추론에만 특화된 칩이기 때문에, 학습과 추론을 모두 처리해야 하는 환경에선 엔비디아 GPU가 여전히 필요합니다. 다만 이미 완성된 모델을 실시간 서비스에 올려 운용하는 추론 서버 환경에서는 전력 효율 면에서 유력한 대안입니다.

 

Q. 퓨리오사AI가 메타의 인수 제안을 거절한 이유가 뭔가요?

A. 메타 전용 칩 공급사로 편입될 경우, 누구나 쓸 수 있는 범용 AI 칩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목표가 한 회사 내부에 갇혀버린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연매출 29억 원 기준으로 400배가 넘는 1조 2,000억 원 제안이었음에도 거절한 것은, 시장 전략적 계산이 감정적 판단보다 앞선 결과입니다. 거절 후 3개월 만에 기업가치 1조 원을 돌파하며 결과적으로 옳은 판단이었음이 입증됐습니다.

 

Q. 한국이 시스템 반도체 점유율이 2~3%밖에 안 되는 이유가 뭔가요?

A. 메모리 반도체에서 워낙 높은 수익이 나다 보니, 대기업 입장에서 언제 수익이 날지 불확실한 시스템 반도체 설계에 적자를 감수하며 뛰어들 유인이 없었습니다. 우수한 설계 인재들도 더 좋은 처우를 찾아 해외로 빠져나가는 구조가 반복됐고, 결과적으로 대기업조차 손을 떼면서 생태계 자체가 형성되지 못한 상태가 40년 가까이 이어졌습니다.

 

Q. 브로드컴과 협력해 만드는 3세대 칩은 어떤 수준인가요?

A. 2나노 공정을 목표로 하며 2028년 상반기 시제품 완성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2나노 공정은 현재 양산 가능한 가장 정밀한 반도체 제조 기술 수준으로, 같은 면적에서 더 많은 트랜지스터를 집적해 성능과 전력 효율을 동시에 높일 수 있습니다. 정부 정책 자금 4,000억 원과 네이버 등 민간 투자 4,000억 원을 합산한 총 8,000억 원의 실탄이 이 프로젝트를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결론

퓨리오사AI의 사례에서 제가 가장 오래 생각하게 된 건 인수 거절이나 스웨덴 수주 같은 결과가 아니었습니다. 빈 강의실 세 칸짜리 책상에서 출발해, 월급이 밀려도 아무도 나가지 않은 그 25명이라는 숫자였습니다. 기술이 아무리 좋아도 결국 사람이 버텨야 가능한 일입니다.

 

냉정하게 보면, 엔비디아의 쿠다 생태계라는 벽은 아직 건재하고, 글로벌 빅테크들의 자체 칩 경쟁도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퓨리오사AI가 진짜 승부를 가리는 시점은 브로드컴과 함께 만드는 3세대 칩이 나오는 2028년 이후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때까지 소프트웨어 생태계의 저변을 얼마나 넓히느냐를 계속 지켜볼 생각입니다. 관심이 있으시다면 MLPerf 벤치마크 결과와 퓨리오사AI 공식 발표를 주기적으로 확인해 두시는 걸 권합니다.

 

참고: 유튜브 채널 <경제화이팅> - 엔비디아 꺾고 세계 1위! 상식 깬 한국 중소기업 회사에 전 세계가 줄서는 이유